고모산성
경북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인 고모(姑母)산성
고모산성에 대해서는 일제 시대에 간략하게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고모성이라 칭하며 주위는 12정이고 석축으로 완전하게 남아 있다. 접속하여 도로를 횡단하는 문성이 있는데 길이는 약170간이며 거의 붕괴되었다.” 라 기록되어 있다.
익성(석현성)은 전체적으로 잘 남아 있으나,나머지는 워낙 훼손이 심하여 원형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여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이곳이 성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경시는 2000년부터 11년간에 걸쳐 총 110억원을 들여 산성을 새로 단장하겠다며 굴삭기까지 동원해5세기경 신라가 축조한 고모산성의 전체 길이 1,300미터 가운데 무려 300미터 구간을 완전히 파괴했다. 신라시대 성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편마암들은 말끔한 화강암으로 바뀌었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 어디에서도 1,500년 전 신라 석공들의 숨결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고모산성은 다 날라 가고, 21세기 문경산성이 쌓아졌다’고들 한다.뜻있는 문경시민들과 일부 언론, 문화재지킴이단체 등이 훼손방지대책을 건의하며 항의하지 않았다면성곽 교체 작업이 지속되어......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길 중 가장 험한 구간인 인근의 토끼비리(명승 제31호).
고려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시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토천(兎遷)"이라 부른데서 유래 한다고 전한다. '비리'란 '벼루'의 사투리로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말하며,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는 곳에서부터 산간협곡을 S자 모양으로 파고 흐르면서 동쪽 산지를 침식하여 만든 벼랑에 형성된 길이다. 돌벼랑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파서 만든 구불구불한 길이 6-7리 나있는데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했다고 한다. 여기에 목조 난간과 석축을 설치하고 전망대와 안내판, 벤치 등을 보완해 안전성을 높였다고 하는데 덥고 신발도 편하지 않아 멀리서 가는 길만 바라보고 돌아섰다.
- 마을 주민이 지금도 동제를 지내고 있다는,석현성 옛길 옆에 그대로 남겨놓은 서낭당 -
- 석현성 안에는 길손의 휴식처인 주막거리를 옛 모습대로 재현해 놓았다 -
- 고모산성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진남교와 국도 3호선 일대의 경치는정말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