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ryboat 2013. 5. 29. 01:42

 

길 상 사

 

   작년 석가탄신일에 교회체육대회에 참석하지 않고 절에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회의 어느 분에게 ‘크리스찬이 어찌…’ 하며 핀잔을 들었지만 올해도 초파일에 절을 찾았다.

 

   5년 전 한번 다녀온 후, 봄비를 머금은 정원은 얼마나 싱그러울까. 눈이 내린 정원은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고 싶었던 길상사.

 

   한성대입구역에서 6번 출구로 나가면 길상사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지만 때가 때인지라 기다리는 줄이 아주 길어 걷기로 했다. 그동안 못 다했던 일상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가게들과 성당, 간송미술관, 고급 주택 등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걷다보면 30분이 멀거나 지루하지 않고 걸을 만 했다.

 

   백석의 애인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요정 대원각의 주인이었던 김영한 여사.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당시 1000억원대의 재산이었던 대원각 건물과 부지 7천여평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를 하면서 길상사로 변신했다.  사양하는 법정 스님을 10년에 걸쳐 설득해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가 개원하던 날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으로부터 108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고, 창건법회서 김영한 여사는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제 소원은 저 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길상사 설법전 앞에는 천주교 신자인 성모상 조각가가 만든 관세음보살상이 서 있고 기독교 신자인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기증했다는 7층 석탑이 있다. 경내에는 수녀님들과 목사님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해마다 부활절에 ‘작은형제 수도회’와 ‘성북동 성당’ 사람들이 달걀을 가지고 오며 12월이면 길상사는 성탄절을 경축하는 현수막을 건다.

 

   개원식에서 법정 스님이

   “길상사는 가난한 절이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며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라고 한 그대로 나눔 정신이 있고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으로 법정 스님의 깊은 뜻을 길상사가 기리고 있다.

 

  여느 절과 달리 고급스럽게 잘 가꾸어진 정원과 계곡, 비탈 등에 자연스럽게 있는 여러 동의 건물은 절의 느낌보다는 아주 부잣집 뼈대 있는 집안의 종가와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진에 담지 못한 아쉬움에 다음기회를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