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열흘 쯤 자리를 비우면 일에 차질이 많이 생겨 안 될 것 같아 1차와 2차의 성지 순례에 참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3
차 유럽성지 순례도 많이 망설인 끝에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끝 무렵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바쁜 일정에 찬찬히 다 둘러볼 여유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우리가 가는 그 장소에서 꼭 봐야
할 것들을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찾아보며 출발 하는 날을 기다렸다.
11박 12일의 여행에서 가슴 벅찬 감동과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로마였다.
첫 방문한 곳인 바티칸 미술관(Musei Vaticani)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 국가인 바티칸 시티 (Vatican City)안에 있다.
베드로 대성당에 인접해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관 가운데 한 곳이며, 많은 미술관과 기념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관저 중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이며, 추기경들의 교황 선출 회의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벽면에는 프레스코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예수의 생애와 성서 이야기들을 주로 그린 그림들
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 [천지창조(Genesis)], 벽화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이다. 중앙 천
장에 있는 천지창조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홉 장면이 이어진다. 이 그림들은 또 다시 세 점씩 세 묶음으로 나뉜다. 첫째는
천지 창조이고, 둘째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된 뒤 그들이 타락하여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이다. 마지막 세번째 장면은 노
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러한 아홉 장면 중, <아담의 창조>는 검지 손가락이 서로 닿을 듯 아담에게 생명을 주려는
찰나의 표현을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천장에는 천지창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천지창조는 천장화의 일부분으로 가운
데 그려져 있었고 성경의〈천지창조〉의 순서와는 반대로 입구 쪽에서부터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 그
림을 찾아보는데 혼란을 겪었다. 인파에 밀려 가만히 서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힘들었지만 천장화를 1분만 봐도 뒷목이
뻐근해 오고 어지러웠고 가장자리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천정화가 잘 보이지 않아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오로지
천지창조만을 감상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했다.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그릴 때. 무려 4년 동안이나 성당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그림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불편한 자세로 천장의 한 쪽 구석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보면서 친구가 물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뭘 그렇게 정성을 들이나? 그 구석까지 누가 알아보기나 하겠어?"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대답했다. "내가 알지."
이런 마음으로 완성한 천정화여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를 찾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다
시 이 곳에 오게 되기를 바라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 다음 간 곳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으로 가톨릭의 총본산인 성 베드로 대성당
[ San Pietro Basilica ,산 피에트로 대성당 ]이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예수님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은 베드로가 묻힌 곳에 세워진 성 베드로 대성당은 입구에 십자
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잘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로 유명하다. 이탈
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며 예수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만이 그를 둘러싸고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의 장면에서
마리아와 예수만을 선택한 이 주제는 복음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고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한 행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
고 내 의지대로 행동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만 하나님을 찾게 되는 나.
예수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탈진 상태로 골고다의 그 언덕을 올라가시고 십자가에 희생하셨구나. 성
모 아리아의 품에 안긴 축 늘어진 예수님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찡해 잠시동안 화난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간 곳은 성 바울 성당(Basilica S. PAOLO fuori le mura)과 세 분수 교회(le tre Fontane)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로 그리스도인
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고 개종을 하여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주님을
전심으로 섬겼다.
성 바울 성당은 베드로 성당처럼 바울이 묻힌 곳에 세운 성당으로 로마 4대 성당 중 하나이면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
당 다음으로 로마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 남쪽으로 좀 더 가면 바오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인생
의 막을 내리고 참수형으로 순교당한 세 분수 교회 (트레폰타나-le tre Fontane)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형리가 사도 바울
의 목을 자르니까 머리가 세 번 통통 튀었고, 세 번 튈 때마다 분수가 퐁퐁 솟았다고 한다. 바오로 사도상은 한 손에는 성
경,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는데, 이는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참수 당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바오로 사도 유해가 안치됐던 지하묘지와 순교 전 갇혔던 너무나 작고 어두웠던 감옥. 참수에 사용 되었던 돌기둥, 바오
로 사도를 묶었던 쇠사슬을 보며 순교자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직 복음 전파를 위해 그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감내했던 사도 바울이 실제로 이 곳 감옥에서 나와서 참수 되었던 곳으
로 갔던 그 길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께 어떤 고백을 올려 드렸을까
참수터로 가는 길에서...
굵은 포승 줄에 묶인 채 한 걸음 한 걸음 참수터로 향하는 이 길에서 지난 날을 회고하나이다.
나는 주를 핍박하던 자요. 죄인 중에 괴수였나이다. 너무나 무지하였고 작고 작은 나를 부르사 주의 길을 가게 하시오니
내 잔이 차고 넘치나이다. 주를 만난 이후 지금까지 나의 호흡과 모든 걸음 걸음이 오직 주의 은혜요, 사랑이었나이다. 주
께서 손을 내미신 그 때부터 내 생명은 떡에 의함이 아니요, 오직 주의 사랑에 의함이였고, 내 심장은 주를 향한 사랑의
힘으로 뛸 수 있었나이다. 수 없는 채찍질에 살갗이 찢기고 온 몸이 핏물로 범벅이 될 때도 빗발치는 돌들에 뼈마디가 부
서질 때도 망망한 바다 가운데 거친 풍랑이 눈앞을 가로 막고 한밤 중 살을 에이는 물결이 휘물아 칠 때도 숱한 굶주림,
헐벗음, 무리들의 조롱과 멸시도 내게는 호리의 고통으로도 감각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불타는 사랑으로 뜨거웠었나이
다. 주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사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셨듯이 나도 주를 사랑함으로 이 모든 것들 앞에 정녕 감사뿐이었나
이다. 그러나 주를 뵈올 때 내게 주신 모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였노라고 고백 할 수 있을는지 다시금 나의 삶을 돌아보
나이다. 이제 잠시 후면 나는 주님 품에 안길지나 등 뒤에는 두고 온 영혼들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오니, 나를 붙드신 주
의 사랑으로 또한 그들을 지켜주소서.
내 붉은 피를 기다리는 하얀 대리석이 눈앞에 이르고 두 팔 벌려 나를 맞으시는 주의 모습이 보이나이다. 내 가슴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희열이 샘물처럼 솟아오르고 온 몸의 세포들까지도 감격으로 전율하나이다. 이 마지막 호흡까지
도 주를 위해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나이다. 오 주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그의 인생 마지막 걸었던 그 길을 바라보며 바울이 감옥에서 저술 했던 디모데후서 1:8 을 되뇌어본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세분수 교회는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예수님의 사랑은 목숨까지 버리시는 사랑이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자
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바울처럼 사랑받을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면서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1절
로마의 마지막 방문지, 성지순례의 필수코스인 카타콤베(Catacombe)
초대교회 교인들이 박해를 피하고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두운 지하에 들어가서 생활했던 카타콤베. 200년간 기
독교인들의 피난처였으며 부활을 꿈꾸며 잠든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묘지이기도 하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물고기 모양
으로 서로를 알아보듯 카타콤베에도 그러한 상징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배를 드렸던 아주 협소한 장소들과 아주 좁은 길
양쪽으로 납골당이었음직한 곳에는 지금도 하얀 작은 돌처럼 보이는 뼛조각이 있는 카타콤베.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이
곳을 보며 자신들의 믿음을 굳건히 지키려 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 절대 순종, 절대 의지, 이
온전한 신앙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따라간 성지순례는 나의 신앙생활을 뒤돌아보고 많은 깨달음을 주는 신앙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끝까지 나를 사랑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요 14:23) 나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
도인이 되어야겠다. 나의 생활은 주목될 것이 없는 소소한 일들이지만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 교회를 사랑하고 세상 사
람을 사랑하고 특히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생활을 하리라.
종교개혁이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목사님 말씀처럼 이 세상에 성경보다
더 큰 권위는 없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경중심의 생활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시 다지게 된다.
여건이 된다면 혼자서 또는 둘이서 자유롭게 성지 순례를 하고 싶다. 넉넉히 시간을 가지고 감동 감화 받는 곳에서는 천
천히 좀 더 머물며 묵상하고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기도 하는 여행, 그런 기회가 오기를 기도하며 부족한 나를 한없는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글을 마친다.
글쓴이 : 김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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