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을 거닐며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덕수궁은 휴식과 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조선 9대 임금이었던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선조와 광해군이 머무르면서 ‘경운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종황제가 1897년부터 경운궁에 머물렀고 일본이 1907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후 고종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1/3로 줄어들어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대한제국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덕수궁. 기울어가는 왕실의 존엄성과 국가의 중흥을 위해 국력이 총동원 되어 완성된 마지막 궁궐로 국난 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던 곳이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 원래 대안문(大安門)이었으나1906년수리와함께‘큰 하늘 문’이라는
의미의 대한문(大漢門)이 되었다.대한문 앞에서의 수문장 교대의식
중화전 - 덕수궁의 정전으로 국가적 공식 행사를 위한 건물
광명문 -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1938년 흥천사종과 보루각 자격루를 진열하기 위하여 현 위치로 이전
보루각 자격루(국보제229호)
석조전 - 궁중건물 중에서는 최초로 유럽풍의 석조로 건립된 건물
정관헌 - 고종황제께서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시던 곳.
철제 난간에는 사슴, 소나무, 당초, 박쥐 등 전통문양을 넣었다.
함녕전(보물제820호) - 고종황제의 침전.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승하하신 곳.
덕홍전 - 주로 외국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 (왼쪽)
덕홍전 뒤편과 정관헌 사이 작고 아담한 후원
석어당 - 덕수궁의 유일한 목조 2층 건물. 선조가 의주로 몽진하셨다가 환도한 후 이 곳에 거처.
1608년 2월 선조가 승하한 곳으로 추정. 인목 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光海君)을 석어당 뜰아래 꿇어앉히고 인목왕후가 죄를
책한 곳. 단청을 하지 않음
32도 까지 올라간 8월 어느 날 덕수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