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4 - 코르도바, 콘스예그라,톨레도, 세고비아
8월 6일 (목) 코르도바, 콘스예그라
코르도바 [Córdoba]
에스파냐 남서부 안달루시아지방 코르도바주 주도. 인구 30만 8027(2001). 과달키비르강 중류 오른쪽 연안 해발고도 106m에 위치.. 로마군에 의한 이베리아 정복과정에서 BC 169년 무렵 창설, 이베리아남부에서 로마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주민은 학예를 애호하였으며 1세기에 철학자 L.A 세네카를 배출하였다. 8세기초 이베리아를 정복한 이슬람교도는 그 수도를 코르도바로 정하였고, 이어서 다마스쿠스에서 쫓겨난 옴미아드왕조가 이곳에 망명정권을 세웠다. 10세기 코르도바는 동쪽 바그다드와 콘스탄티노플에 견줄만한 서방 제일의 도시로 발전해 <서방의 보배>라고까지 평판이 났다. 그러나 11세기초 전쟁터로 바뀌었으며, 200년 후 그리스도교도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쇠퇴하였다.
* 유대인 거리 (La Juderia)
스페인 코르도바 유태인거리는 메스키타 북서쪽에 펼쳐진 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골목과 하얀 벽들의 집들이 늘어선 거리로 스페인 가톨릭 왕 부처가 추방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수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유대인 거리의 특징은 하얗게 칠한 벽과 벽에 장식된 작은 화분들이다. 골목을 더욱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지금까지 중 가장 아름다운 거리!
* 메스키타 [Mezquita]
에스파냐 이슬람건축의 걸작. 압둘라흐만 1세에 의해 758년에 착공되고, 3년 후에 히샴 1세가 완성시켰다. <오렌지나무의 가운데 뜰(73m×36m)>과 그 남쪽에 아랍식의 다주식 예배당(多柱式 禮拜堂;柱間數는 내림 11칸, 안길이 12칸으로 규모는 73m×38m)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 설계의 석조 건축으로 성채와 같이 두껍고 높은 벽에 둘러싸여, 사마라의 대(大)모스크 다음가는 웅대한 규모를 지녔다. 그 뒤 987년까지 그 후 역대 왕들이 계속 4차에 걸쳐 증·개축을 하여, 최종적으로는 136m×186m의 대규모 건물이 되었는데 여전히 뛰어난 조화는 잃지 않고 있다. 이 모스크의 특색은, 큰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원주(圓柱)에 피어(pier)를 겹쳐 놓고 그 위에 흰 돌과 붉은 벽돌로 된 줄무늬의 2층 아치를 얹은 점과, 모자이크와 회반죽 세공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미흐라브가 팔각형 설계의 작은 방에 마련되어 있는 점이다. 1236년 카스티야왕 페르난도 3세의 재정복에 의하여 가톨릭교의 대성당으로 전용(轉用)되었는데, 특히 1510∼1607년에 중앙에 십자형 설계의 고딕풍 성당이 건립 되어 본래의 이슬람 양식이 변형되기도 했으나, 면죄의 문이나 오렌지 정원(Patio de los Naranjos), 종려의 입구(Puerta de las Palmas) 등 무데하르 양식으로 된 이슬람의 멋진 건물과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절에서 기와 불사 하듯이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을 써 넣은 것
* 풍차마을 콘수에그라
8월 7일(금) 톨레도, 세고비아
톨레도 [Toledo]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70㎞ 떨어진 톨레도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으로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곳에 위치. 에스파냐 톨레도주의 주도. 인구 5만 9563(1991). 타호(타구스)강 오른쪽 연안, 해발고도 529m에 있다. 마드리드가 수도로 되기 이전 에스파냐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수석주교좌(首席主敎座)의 소재지. 역사적 건물이 많은 옛 도시. 기원전 2세기에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건설돼 8~11세기에는 서고트 족의 본거지였다가 15세기 말 가톨릭이 진입할 때까지는 이슬람이 지배했다. 시가지 북부는 이슬람시대의 성벽으로 일부 둘러싸였고, 옛 시가지에는 미로 같은 좁은 도로와 막다른 골목이 많으며, 파티오(中庭)와 장식압정(裝飾押釘)이 달린 문과 집들이 늘어서 이슬람지배 시대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시내 건물의 개수(改修)는 금지되어 있고 이슬람시대로부터 도검(刀劍) 제조와 직물업이 유명하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타호강이 둘러싼 톨레도 시가지
* 톨레도 대성당 Toledo Catedral
1227년 페르난도 3세 시대에 착공하여 15세기 말에 완공된 성당. 장식 조각들과 내부의 예술품들로 인해 성당이기 이전에 종교 예술 박물관 같은 곳이다.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시작된 고딕 양식의 웅장한 석조 건물이다. 중앙 홀의 천정 높이만 40m에 달하며, 외부에 우뚝 솟아 있는 종탑의 높이는 90m.
대성당 정문에 해당하는 서쪽 문은 15세기에 지어진 용서의 문이고, 북쪽 문은 13세기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문인 시계의 문. 남쪽 문인 사자의 문. 정문인 용서의 문에는 성모 마리아가 7세기 톨레도 주교의 헌신에 감사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종탑은 15세기에 지어졌고, 그 중 하나는 17세기에 유명한 화가 엘 그레코의 아들이 돔 지붕으로 대체해 놓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세 개의 문 중, 사자의 문인 남쪽 문은 19세기 초에 네오 클래식 양식의 새로운 문으로 대체되었다.
내부는 22개에 달하는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이 중 본 제단 못 미쳐 중앙 홀에 설치된 코로Coro라 불리는 예배당은 톨레도 대성당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당이다.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거점도시였던 그라나다를 정복한 전쟁을 54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나무 부조 조각과, 조각 상부에 구약의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는 설화석고로 제작된 인물들은, 세밀화를 연상시키는 걸작품이다. 내부 사진 촬영 금지
* 산토 도메 교회 (IGLESIA DE SANTO TOME)
1586년에 완공된 이 교회는 가장 오래된 부분은 12세기의 것이며, l4세기의 아름다운 무데하르 양식(그리스도 지배하의 이슬람교도들이 만들어낸 건축 양식으로 벽돌이나 석고를 사용하여 섬세한 장식을 한 건물)의 화려한 탑과 입구부분에 남아있는 서고트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교회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스페인 3대 화가인 엘 그레코 El Greco 의 작품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온다. 1323년에 사망한 오르가스 백작은 이 지방의 귀족이었으며 일생동안 성당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 주었다고 한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신망이 두터웠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순간, 성 스테파누스와 성 아우구스타누스가 날아 내려와 백작의 유체를 묘에 안장했다는 전설에 근거하여 그려졌다. 매장에 참석한 톨레도 시민들의 줄을 경계로 천상계와 지상계가 나뉘어져 있다. 비례에 왜곡이 있는 천상계는 필치나 색채 모두 신비스럽다. 백작의 혼은 갓난아기 같은 형태로 천사들에 의해 운반되고 있다.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그리스도에 의한 심판을 받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죽음을 맞는가에 초점을 맞춰 제작한 작품이다. 그림에서 갑옷을 입은 채 하관되는 인물이 바로 오르가스 백작이다. 신은 성 스테파누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두 성자를 지상에 내려 보내 그들이 망자의 주검을 직접 관에 안치하도록 한다. 황금빛 예복을 입고 주검의 왼편과 오른편을 각각 맡아 관에 누이려는 이들이 바로 성 스테파누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예식에 참석한 성직자들과 문상객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명상에 잠긴 모습으로 이 기적에 감사하고 있다. 그들 위로 구름의 아랫부분과 천사가 보이는데, 이 주제를 그린 다른 대작에서는 죽은 오르가스 백작이 천상에 올라 신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는 모습까지 담겨 있다. 죽음으로 존재가 종말을 맞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나아가게 된다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가득 담겨 있는 작품이다
▲ 천상계의 모습 - 심판자 예수가 앉아 있는 중앙 발밑에는 마리아와 요한이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마리아의 등 뒤로는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가 그 아래로는 하프를 든 다윗과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든 모세, 방주를 앞에 둔 노아가 보인다. 요한 뒤쪽으로 보이는 이들은 성인들이다. 이들은 지금 오르가스 백작을 심판하기 위해 모여있다.
▲ 지상계 - 금색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성 스테파누스이고, 수염을 기른 노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이며 갑옷을 입은채 하관되고 있는 사람이 오르가스 백작이다. 뒤로는 매장에 참석한 톨레도 시민들의 모습이다.
▲ 꼬마 아이는 엘 그레코의 8살짜리 아들로 아이의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손수건에는 아이가 태어난 해인 1587이란 숫자가 쓰여 있다고 한다. 성 스테파누스의 옷자락엔 그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가 스테파누스 성인임을 표현하고 있는 거라고.
▲ 엘 그레코는 그림 속에 애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그려 넣었는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모두들 하늘을 바라보거나 시신을 바라보거나 백작의 매장에 관심을 보이는 시선들이나 한 명만은 그들과는 달리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엘 그레코이다.(손을 들고 있는 뒤의 인물)
El Greco 의 작품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 화보 촬영 -
세고비아 [Segovia]
에스파냐 중앙부 구(舊)카스티야지방 세고비아주의 주도. 인구 5만 4142(1991). 수도 마드리드 북서쪽 약 60㎞, 과다라마산맥의 북서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구시가지의 가도는 좁게 뒤얽혀 있고, 고딕양식의 대성당(16세기), 로마네스크양식의 산 에스테반교회(12세기)와 베라크루스교회(13세기) 등이 있으며, 남쪽 저지대의 넓은 시가지에는 로마의 수도교(水道橋)가 있는 등 역사적 건조물이 많다. 로마인이 구축한 도시로 8세기에 무어인이 점령, 11세기에 알폰소 6세가 탈환, 이후 카스티야 궁정소재지의 하나로 번영했다.
* 로마제국의 수도교(Acueducto Romano)
물을 공급하기 위해 처음 세워진 교량 형태이다. 수로는 협곡이나 계곡을 통과해야 했으므로 이를 위해 수도교가 건설되었다. 물은 수도교의 위층에 설치된 콘크리트의 수로를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흘러갔고, 골짜기를 건널 때는 1층이나 2층, 또는 3층의 아치가 만들어졌다. 서기 50년경 클라우디스 황제 시절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로마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수도교는 세고비아의 아소게호 광장(Plaza Azoguejo)에 우뚝 서 있으며 프리오 강(Rio Frio)의 물을 도시의 높은 지역으로 대기위해 만든 것이다. 벽돌만 2만 여개나 사용되었으며 전체 길이 728m, 아치의 수는 167개 최대 높이 28.29m다. 198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유명한 수도교 3개
■ 세고비아 수도교 ■북동부 해안지대에 있는 타라고나 수도교
■ 프랑스 남부 해안지대에 있는 퐁 뒤 가르 수도교
* 알카사르 [Segovia Alcazar]
스페인의 많은 알카사르 중에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는 특히 유명한데 월트디즈니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구시가지의 북서쪽 끝에 알카사르(Alcázar;세고비아성)가 우뚝솟아 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알카사르는 오래된 요새를 11세기 이후에 다시 증설하여 개축한 것으로 현재 건물은 19세기의 것이다. 또한 카스티야왕이 살던 성으로 여왕 이사벨도 즉위 무렵 이 성에 살았다. 이사벨 여왕이 카스티야의 여왕 즉위식을 치른 곳
* 세고비아 대성당(Cathedral of St. Mayr) 정식 명칭: 성 마리아 대성당
스페인 최후의 고딕양식 사원으로 전쟁으로 불타버린 산타마이라 카테드랄 자리에 1525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678년에 완성되었다. 세련된 모양 때문에 '대성당 중의 귀부인'이라고 불린다. 높이는 88미터, 내부길이 105미터, 폭50미터 규모다. 정면은 자연스럽게 서쪽을 향하고 있어 태양광선을 그대로 받고 있다. 교회의 본당뿐만 아니라 제단 주변에도 각각 7개의 12개의 예배소가 있는데 이곳 역시 역사적인 예술품 등으로 장식되었다. 성당 안에 있는 부속 박물관은 은이나 태피스트리로 만든 섬세한 유물들과 문서, 고성서 등이 전시되어있으며, 특히 이곳에는 스페인에서 최초로 인쇄된 Codex of Aguilafuente라는 고서를 볼 수 있다. 또한 어린아이의 무덤이 있는데 유모의 실수로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엔리케 2세 아들 페드로의 무덤이다. 왕자를 실수로 죽게 한 유모도 즉시 그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세고비아의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앞에는 거대한 석조 건물인 세고비아의 대성당이 있다. 규모가 작으나 주변이 아름답다.
* 코치니요(Cochinillo asado) - 새끼돼지 통구이
세고비아의 명물, 코치니요
코치니요용 품종이 있을 정도로 고기의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하는데 엄마 돼지는 엄선된 천연사료만을 먹여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새끼돼지는 엄마 젖만을 먹여서 키우다가 몸무게가 5Kg쯤 되면 생후 3주(1달) 정도 되면 요리한다고 한다. 작고 어린 새끼 돼지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의 요리, 코치니요는 서빙할 때 손님들에게 보여준 후 목을 접시로 쳐서 잘라낸 후 접시를 바닥에 던져 깨뜨린다. 접시를 바닥에 던지는 이유는 첫번째는 고기의 연함을 증명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실제 접시로 잘랐음을 증명하는 제스쳐라고 한다. 손님의 접시에 덜어줌으로써 쇼는 끝. 와인을 곁들여 먹는 코치니요는 얇고 바삭한 껍질과 입에서 녹아내리는 살코기의 맛이 일품인 스페인의 명물요리다. 처음 요리를 가져왔을 때는 잔인하고 불쾌함을 느끼지만 파삭하고 고소한 돼지껍질,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의 이 맛을 보면? 난 한번 더 달라고 하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