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와 가족이며 평생의 친구이자 뛰어난 글 솜씨와 성적으로 열등감을 안긴 라이벌이기도 했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29년 짧은 생애를 흑백필름으로 담은,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잊지 못할 그리고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아프고 슬픈 역사를 그리고 있다.
윤동주가 형사에게 심문을 당할 때 떠올리는 기억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같은 집에서 태어나고 같이 자란 동갑인 윤동주와 송몽규, 꿈도 언어도 이름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그들의 청춘 시대 이야기이다.
송몽규는 19살 나이에 술가락이란 콩트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였으나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고 그해 학업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열혈 청년이었던 반면 소심한 성격의 윤동주는 문학의 뒤에 숨는다는 비난을 받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시로 표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본다.
중국에서 다시 돌아온 송몽규는 경성과 일본 유학 생활까지 함께 할 정도로 윤동주의 삶과 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교토 제대에 단번에 입학하고 유학생들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하는 송몽규를 보면서 윤동주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들을 미사여구없이 정직하고 담담하게 읖조린다. 이렇게 영화 중간 중간 강하늘의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이 시들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와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영화의 OST처럼 그 장면 장면과도 절묘하게 잘 맞는 가슴절절하게 와 닿는 시들.
교토 제대에 낙방하고 송몽규가 권한 릿쿄대학 영문과에 다니는 윤동주는 홀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돌아와 시를 쓴다. 총 대신 펜을 잡고 저항했던 윤동주, 그의 시에는 조국을 위해 총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자신의 죄의식을 고백하는 부끄러움이라는 느낌이 항상 들어가 있는 거 같다.
참 회 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일 개월(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하략)
정지용 시인은. '윤 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라고 동주에게 말한다.
형사가 조서에 사인하라고 했을 때 거기에 써 있는 사실들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자신이 행동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너무 너무 부끄러워서 절대로 싸인할 수 없다고 외치는 윤동주. 윤동주의 죄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을 끝없이 부끄러워했다는 것이다
1943년 7월에 독립 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2년 형을 받고,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며 복역하던 중, 조국광복을 불과 반 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감옥 안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다. 윤동주가 죽은 열흘 뒤인 3월7일 숨 진 송몽규는 뼛조각 하나 일본 땅에 남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은 고향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