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해외여행

중앙아시아3

ferryboat 2010. 9. 25. 18:44

7월 26일(일) 사마르칸트 → 샤크리 샤브즈 → 부하라

◆ 비비하님 모스크 (Bibi Khanum Mosque)

1399년에서 1404년 사이에 지어진 비비하님 모스크는 레기스탄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로 손꼽히는 건축물이다. 높이가 35m이며, 미나렛의 높이는 50m이다. 안뜰은 직사각형으로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모퉁이에는 미나렛들이 서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400개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400개의 둥근 지붕으로 이루어진 회랑이 있다. 안뜰의 남쪽과 북쪽에는 보조 모스크들이 있으며, 동쪽에는 높이 40m에 달하는 정문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건물들은 대리석 조각, 테라코타, 유약을 바른 모자이크, 청색-금색 프레스코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15세기 완공되었을 당시에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돔으로 이름을 떨쳤었다. 안뜰의 중앙에는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코란대가 있다. 한 때 이곳에는 1제곱미터의 크기의 오스만 코란이 놓여 있었다. 이것은 7세기의 유물로, 티무르가 이곳으로 가져왔던 것이며, 1875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다가, 볼셰비키에 의해 다시 타쉬켄트로 반환되었다.

비비하님 모스크를 건축한 티무르왕은 여러 아내를 거느리고 살았는데, 그들 중에서 비비하님을 가장 총애했었다고 한다. 티무르가 북인도를 유린하는 동안, 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인 중국인(몽골) 공주 비비하님은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로 돌아왔을 때 그를 놀래어주기 위해서 거대한 모스크의 건설을 명하였다. 모스크의 다른 부분은 모두 완성되었으나, 단지 아치 하나만이 완성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녀가 건설감독에게 그 이유를 묻자, 페르시아로부터 잡혀온 이 젊은이는 자신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했으며, 그녀에게 키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티무르가 돌아오기 전까지 완공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입맞춤을 해준다면 완공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건축가와 입맞춤을 하게 되었고 왕비의 볼에 건축가의 입맞춤 자국이 남게 되었다. 돌아온 티무르는 거대한 모스크를 보고 기뻐했지만 왕비의 입맞춤 자국에 화가 나 건축가를 사형시켰고 왕비에게는 차도르를 쓰도록 했다. 그 이후 자신의 영토 안의 모든 여성들이 천으로 얼굴을 가릴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건축가는 미나렛의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이게 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그후 왕비는 완성된 미나레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도, 실재하지 않은 이야기라고도 전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바자르로 가고 우리 일행 4명은 여기에 앉아 쉬기도 하며 천천히 더 둘러봤다

◆ 아프라시압 박물관 Afrasiab Museum

구(舊) 소련의 고고학자들이 옛 사마르칸트의 중심지였던 아프라시압 언덕을 발굴하다 다양한 유물들을 발견하게 되어 근처의 대리석박물관에 모아둔 것을 계기로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전시실에는 발굴 당시의 사진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아프라시압의 역사를 보여준다. 유물들은 그리스 계(系) 왕국 박트리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기념품인 칼, 은전 등과 칠보 꽃병, 테라코타, 채문토기, 귀금속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1965년에 7세기 벽화를 공개하여 세계의 이목을 받았는데, 이 벽화는 사마르칸트의 통치자 저택 안에 있던 것을 벽째 뜯어와 실제 크기로 재생한 것이다. 벽화에는 사마르칸트를 방문한 각국 사절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코끼리를 탄 신부와 칼을 차고 낙타를 타고 가는 남자들의 모습 등 당시의 소그드 사람들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벽화로, 조우관을 쓴 당시 한국인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 티무르의 고향인 샤흐리 샤브즈로 이동 - Ak-Saray Palace 답사

◆ 악사라이 궁전터 Ak-Saray Palace

샤크리삽즈는 티무르의 고향마을로 옛날에는 아마도 사마르칸트 자체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것같다. 티무르의 아크-사라이 궁전(Ak-Saray Palace)이 웅장한 줄세공같은 청색, 흰색, 금색 모자이크로 덮여 있는 40미터(131피트)높이의 입구인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장려한 여름 궁전의 나머지가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게 된다.

※ 키질쿰사막(Kizilkum Des.- 붉은 사막)을 지나 부하라로 이동 (5시간)

7월 27일(월) 부하라

부하라 Bukhara

부하라 (Bukhara)는 중앙아시아에서 고대의 이슬람문화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 대부분의 기념물은 도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흔히 이곳을 우즈베키스탄의 보물이라고 부르며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은 다양한 건축물들이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특히 이곳의 가장 유명 유적은 칼랸 미나레트(Kalyan Minaret)로 고대 부하라의 상징과도 같은 유적이다. 징기스칸(Genghis Khan)이 이 도시를 파괴하였을 때에도 캴랸 미나레트(Kalyan Minaret)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만은 남겨 놓았다고 할 정도이다.

부하라는 사마르칸트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때 거대한 실크로드 상업의 중심지였다. 또한 과거에는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배움의 열기가 가장 높은 도시로서 약 350개의 이슬람 모스크와 100여개의 신학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 이러한 명성은 17세기 중앙아시아 대정복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부하라가 얼마나 오래된 도시인가 하는가는 이곳 유적의 방사능 연대측정으로 알 수 있는데 가장 오래된 층은BC3~4 세기의 것이며 가장 최근의 유적은 9세기부터 20세기로 추정되어 약 2500년을 아우르는 역사를 가진 도시임을 알수 있게 한다. 특히 이곳이 가진 140여개의 역사적인 건축물은 부하라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이러한 건축물들은 만들어진 시기도 달라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1997년이 도시 개국 2500년을 기념하는 해였으며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고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건물의 외벽은 인위적인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진흙 색깔 그대로를 이용하여 표현하였으며, 수세기동안 사막과 함께 조화를 이뤄온 고대 건물 등은 그것 스스로 고대의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새벽에 일어나 주변을 돌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길을 돌아다닐 때의 상쾌함. 발자국을 그려 넣은 것이 있어 골목을 돌고 돌아 따라 갔더니 카페가 나왔다.

◆ 나스렛딘 호자의 동상. 부하라의 시내 관광의 중심지인 라비하우즈 앞에는 익살스런 모양의 동상이 있다. 나스렛딘 호자의 동상. 우리나라의 봉이 김선달 같은 인물로 풍자시인이다. 왼손은 돈 또는 OK, 오른손은 겸손을 의미한다고 한다.

◆ 라비하우즈 모스크



◆발라쿠스 모스크 - 왕족 전용 모스크, 기둥이 호수에 비친 것과 합쳐서 40개

◆ 나디라디반베기 메드레세

17C 부하라지역 지방제정담당관 나디라디반베기에 의해 건설된 신학교로 2마리의 봉황이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과 태양 중심에 사람이 얼굴이 그려져 있는 이채로운 두해의 대형 메드레세와 대상인의 숙소인 하나카로 구성되어 있음


◆ 아르크 성 Ark citadel

아르크 성(Ark citadel)은 AD100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기록에 따르면 Bukhar-khudat Bidun이 이곳의 성곽을 건설한 후에 궁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거의 완성될 즈음 갑작스런 붕괴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부하라 제국은 실패의 원인을 찾아 일곱 개의 돌기둥 위에 다시 건설을 하였다. 이 성채는 궁, 부속 건물들, 성벽으로 이루어졌으며 34,675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두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원래 서쪽에 한개만 있었던 것이1921년에서 1923년까지 2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대에 이곳은 부하라 지배자의 거주지로 내부에는 왕궁뿐만 아니라 사원, 수용소, 사무실, 조폐소, 창고, 공장, 마구간, 무기고 심지어는 감옥까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 내부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공예품과 거주지로 쓰였을 당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 이곳은 계속해서 재건축을 거듭하였으며 현재 남아있는 주요 부분은 17세기에서 20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은 특히 곳곳에 아름다운 아치로 꾸며진 복도와 정원이 많아서 산책하기에 매우좋다. 성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볼러하우스 모스크는 1718년에 지어진 것으로 왕의 기도처로 이용되던 곳이다. 정면에 위치한 20개의 나무 조각 기둥이 인상적이다. 모스크 바로 앞에는 낮은 미나레트와 우물이 있는데, 모스크의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볼러하우스는 타직 말로 ‘우물의 위쪽에 있는’이란 뜻이다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


부하라가 자랑하는 수많은 유적들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은 이스마일 샤마니왕의 영묘이다. 영묘 이슬람 통치 초기인 900년에 건설된 것으로 부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중앙아시아 건축물의 기념비적인 존재로까지 평가되는 이 영묘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흙벽돌의 무늬가 오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여 신비감을 더해 준다. 벽돌을 사용해 쌓아올린 기법만으로 변화를 주어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구운 벽돌에 상감을 입혀서 만들었기 때문에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여기에 사용된 진흙 벽돌은 수천년을 견딜 수 있도록 낙타 젖으로 반죽을 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칼리안 미나레트


부하라의 상징으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높은 미나레트(첨탑)이다. 칼란이란 페르시아어로 '크다'는 뜻이고 미나레 트는 '첨탑'이라는 말이다. 높이 46m의 칼랸 미나레트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18∼19세기 부하라 한국시대에는 죄인들을 이 탑의 꼭대기에서 내던져 처형했다고 해서 ‘죽음의 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탑의 안으로 들어서면 나선형 계단이 있다. 탑 주변은 한줄기의 푸른 타일로 장식해서 신비감을 더해준다. 옛날 칭기즈칸은 칼랸 미나레트를 목표로 부하라를 침공했으며, 이 때문에 탑이 파괴되지 않았다고도 전해진다. 미나레트은 망망한 사막에서 오아시스의 도시를 찾는 대상들에게 사막의 등대가 되었다. 미나레트는 사람들에게 하루 5차례 예배시간을 알려주는 기능과 함께 밤에는 사막의 등대역할을 했던 것이다. 옛날 캄캄한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들은 탑의 꼭대기에 밝혀진 불빛을 목표로 물과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환대가 기다리는 오아시스를 향해 지친 몸을 이끌었을 것이다.

◆ 차슈마 아유프 : 아르크 성 건너에 공원을 가로지르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세 개의 돔이 보인다. 이곳이 차슈마 아유프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욥의 샘'으로 욥이 지팡이를 세웠더니 이곳에서 물이 솟았다고 한다. 둥근 원추형 지붕의 3개중에 1개는 채광 창을 갖춘 이 묘는 칭기즈칸때 파괴된 것을 티무르가 복구했다. 지금은 건물 안쪽에서 신비한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이 성스러운 샘은 둥근 지붕의 아름다운 건물 속에 보존되어 있다.


◆ 타키 : 타키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시장으로 관문 역할도 한다. 규모가 가장 큰 '타키 자르가'(둥근지붕의 보석시장)를 비롯, '타키켈리파크 푸르샨'(둥근지붕의 모자가게), '타키 사라판'(둥근 지붕의 환전소) 등이 있다.

리아비 카우스 바자르 : 16세기 이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이 곳은 금 세공품, 금속 공예품, 비단제품 등으로 유명하다.

부하라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