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국내여행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ferryboat 2011. 10. 22. 19:29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해야하고 같이 갈 좋은 동료가 있어야하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번 여행은 발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여서 불안했지만 어렵게 시간을 맞춘터라 강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섬으로의 여행은 날씨가 큰 몫을 해서 지난 번 백령도의 여행도 그렇지만 이번의 울릉도와 독도역시 날씨 때문에 계획대로 떠날 수 없었다. 대신 2박 3일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을 하기로 하고 일단 해인사로 가서 그 다음은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기!

서대구에 내린 후, 해인사까지 50,000원이라는 택시기사를 뿌리치고서부터미널에 버스로 도착하여 한 시간 넘게 해인사 가는 버스를 또 타고 가는 그 길.

풍경과 사람들의 인심은 아름다웠고 재미있었다. 대구에서는 택시에 5명이 타도 괜찮다는 경찰들, 우리가 버스타고 가겠다고 했더니 괜히 화가 난 택시기사, 내릴 곳을 지나칠까 조바심할 때 친절하게 알려주는 승객들, 승객들을 태우고 가다 멈추고 약수터에서 물을 받는 버스기사 등등.


가야의 건국설화를 지닌 정현모주와 이비하가 놀던 가야산에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숨 쉬고 있다. 가을의 단풍이 너무 붉어서 계곡의 물이 붉게 보인다는 가야산 자락 홍류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즈넉한 천년고찰 해인사 입구에 도착한다. 해인이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한 것으로 득도한 이후의 청정한 마음을 일컫는다고 한다. 해인사는 통도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 사찰의 하나이며 당에서 수도한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신라 말 애장왕 3년(802)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내에는 많은 법당이 있으나 그 대부분은 근세에 세워진 것이고 장경판전만이 조선 초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해인사를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 부르는 것은대장경판전에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고려대장경판인 법보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였다고 불보사찰(佛寶寺刹). 송광사는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에 삼보사찰이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일주문에서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까지는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팔만대장경을 보라는 의미에서 108계단이라고 한다. 고려의 목공들이 팔만대장경의 글자 한자를 새길 때마다 한 번씩 합장한 그 정성과 고려의 국난극복의 의지가 팔만대장경을 위대한 유산으로 만들 수 있었고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며 몇 백 명의 공비 소탕보다는 팔만대장경이 더 소중하다는 김영환 대령의(당시의 계급) 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유산으로 남겨진 것이리라.


경남 합천군 가야면에서 해인사를 연결하는 가야산 홍류동 계곡 6km 구간에 조성된 걷기 테마로드인 '해인사 소리길' 처음에는 마음길 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리길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인사측에서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곳곳에 마련된 돌아보는 길, 침묵의 길, 명상의 길, 함께 하는 길, 비움의 자리, 칭찬하기, 마음 씻기 등의 테마별 코스가 있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곳의 매력에빠져든다.


이번 여행의 댓가로 수술부위가 완전히 벌어져서 처음 수술 할 때와 똑같이 다시 수술을 했고, 2달 동안은 꼼짝하지 말라는 의사의 엄명을 받았다. 지금 진통제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통을 참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