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정릉’이라고 하면 두 곳이 있어 누구의 능인지 구분이 안 되어 꼭 그 능이 있는 동네이름을 말해야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정릉(靖陵)이라고 하면 조선 11대왕 중종(中宗)의 능을 말하며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貞陵)이라고 하면 신덕왕후 강씨의 능을 말한다. 그 외에도 북한에 있는 공민왕의 비(妃)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능과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桓祖)의 능도 정릉으로 불린다.
사적 제208호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이다. 1356년에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의 딸로 태어난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에게 버들잎을 띄워 물을 준 버들잎 설화의 주인공으로, 1392년 조선(朝鮮)의 개국으로 이성계가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의 첫 왕비(王妃)가 되어 현비(顯妃)에 봉해졌다. 그러나 이방원 등 신의왕후의 아들들과의 후계 다툼으로 알력이 있었고, 신덕왕후가 1396년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신덕왕후의 아들 둘은 모두 제거되었으며, 사위인 이제까지 살해당하였다.
태종(이방원)은 즉위 후 태조가 애지중지하는 정릉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원래 정동(貞洞) 영국대사관 자리에 있었던 것을 태조가 승하한 다음해인 태종 9년(1409년) 도성 안에 능이 있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이유로 도성 밖 양주, 현재의 서울시 성북구로 이전했다. 뿐만 아니라 태종은 원래 정릉의 정자각을 헐고,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없애도록 명했으며, 다음해인 1410년 홍수에 광통교가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게 하여 온 백성이 이것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수백 년간 방치해 둔 정릉은 왕후의 능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까지 황폐해졌고 1669년(현종10) 송시열과 서인의 협박에 가까운 간청으로 종묘에 배향하고 능묘를개축하고 수호군을 배치하여 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덕왕후 강씨의 기신제가 9월 23일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