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오랜만에 떠난 길, 그동안 숙제였던 퇴출을 해결하고 처음으로 뭉친 기회여서 더욱즐거운 나들이었다.
지리한 장마 끝에 떠난 김제 청운사 하소 백련지와 전주 덕진공원으로의 여행.
새우가 알을 품는 형상을 하고 있어 '하소백련'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글쎄? 다랑이식으로 연못이 있다는 것 외에 내 눈으로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25일간 계속된 장마로 연꽃이 잠긴 곳도 있고 아직 만발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눈꽃열차를 타고 강원도에 갔을 때, 왕벚꽃을 보러 갔을 때, 동백을 보러 갔을 때에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만발한 연꽃을 상상하며 갔으나 항상 기후가 따라주지 못해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르거나! 그러나 경치도 중요하지만 함께 한 사람들 때문에 여행은 항상 설레고 즐겁다는 생각이다.
연꽃 축제기간에만 문을 연다는 수자타(좋은 곳에서 태어나라는 의미의 인도어)에서 연잎밥을 먹고 전주 덕진공원 대신 망해사로 발길을 돌렸다.
망해사로 들어가는 휘어져 돌아가는 오솔길을 따라 왼쪽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서 시원한 바닷바람에 누리딩디한 서해 바다와 갯벌 냄새까지 맡으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절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다를 보고 있는 망해사로 들어섰다. 바다를 ‘바라보는’ 망해사지만 이젠 바다를 ‘그리워하는’ 망해사, 바다 때문에 ‘망한’ 망해사가 될 것 같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물길이 막힌 앞 바다는 서서히 육지가 되어 조만간 바다가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 2년(642년)에 창건했다고는 하는데 그 때의 절은 땅이 꺼져서 바다 속으로 잠겨버렸고 1000년쯤 지나 진묵대사가 낙서전(1589년 선조 22년)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ㄱ자 모양으로 돼 있고 울타리에는 스님들이 공부 중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써 있다. 1933년과 1977년 고쳐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낙서전 마루에 있다가 새로 지은 종루로 옮겨진 범종은 마당 맨 앞에서 바다를 보고, 옆의 돌계단을 내려가면 지하에 우물(?)이 있다. 몇 백살 된 팽나무와 극락전과 낙서전, 종각과 요사채가 올망 졸망 모여 있는 절은 소박하다.
절에서 나와 새만금 바람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심포항에 이른다. 한때는 번성했다는 심포항이 이제 그 생을 마감하고 있는 중이다. 새만금 방조제 때문에 바다가 예전 같지 않아 물이 잘 빠지지도 차지도 않아 고기 잡기를 포기한 어선들이 서있고, 횟집대신 공장을 짓는 소리만이 요란할 뿐이었다. 인적이 끊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망치고 죽이는‘인간의 욕망’을 본 심포항은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