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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국내여행

길치

길치

 

가을 여행을 어디로 갈지 고심하고 있는 나에게

문경에 있는 우리 집에 가는것이 어떠냐고 유애란쌤이 제의하셨다.

열쇠를 줄테니 자기집 처럼 편하게 사용하라고 하면서!

 

황토방에서 잠도 자고

마당에서 별을 바라보며 고기도 구워먹고

과일도 따고 밭에 가서 호박, 가지, 상추마음대로 따서 먹고

남는 것은 집으로 가져가라고...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 집 열쇠를 내주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존경한다면서 모두 좋아했다.

 

문경으로 여행지를 결정하고 떠나기 전

일주일 동안은

집까지 찾아가는 길을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항공사진으로 지도까지 받아두고

그 집의 밭과 과일나무들은 어디까지인지

나름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새겨두었다.

 

1시 이수역에서 출발

그런대로 잘 가다가

문경 IC로 나가라고 했는데 문경세재 IC가 나와서

그대로 지나쳤다가 같은 곳임을 알고 다시 문경세재 IC로 되돌아 왔다.

(길치의 첫 번째 증거)


문경IC도착 시간은 3시 50분

문경세재 IC에서 3분밖에 안 걸린다는 그 집을 찾기 위해

동네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고

서울에서 문경까지 올 수 있는 시간인 2시간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동네를 빙글빙글 돌고 돌고 또 돌고 같은 곳을 계속 갔다 왔다

어느 실버타운 사무실에 들어가서

컴퓨터로 지번 찍어서 알게 된 지도도 소용이 없었다.

삼거리에서 가운데 길로

그다음 삼거리에서...어? 여기가 삼거리인가?

무슨 삼거리가 3미터정도 지나면 또 나와 여기는 분명 삼거리 아니야

그러다가 길을 잃고 또 헤매고 (길치임을 나타내주는 두번째 증거)

 

천신만고 끝에

쌤이 말한 난간없는 다리를 발견했을 때.

나무 한 개가 대문대신 걸쳐져 있는 집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특히 밖에서 식사할 때의 그 분위기와

꿀맛같은 음식들은 우리 모두를 들뜨게 했다.


이젠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는데

5시 30분 집에 도착하자마자 켜둔 보일러가 가동은 하는데

방이 전혀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9시 30분이 되었는데도 방바닥이 너무 차거워서 누울 생각은 못하고

가져간 담요와 그 집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5명이 앉아서 오들오들떨면서

이 동네 찜질방있나 알아볼 껄 그랬나봐.

우리 다음 여행에는 편한 펜션으로 가자. 등등 말들을 할 때

 

집주인으로부터의 반가운 전화가 왔다.

방 열쇠 주고, 추울까봐 동네아저씨께 전화해서 보일러 봐주라고 하고

그러면서도 미안해 하고...

 

그 동네에 사는 부부가 오셔서 방의 벨브를 열어준 다음에

황토방은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말 행복하게 1박 2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그 집에서 문경 IC까지는 정말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역시 길치이구나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어요.

길치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

집 바로 옆에서 딴 배와 감은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호박, 가지. 배추는

모두 남의 집에서 따온 것이었던 것이었다.

호박과 가지는 5명이 나누어서 집에까지 가지고 왔으니

남의 밭에서 딴 그 양이...

아이구 이를 어째.

 

 

정말 탐났던 장독 뚜껑


 

우리를 애태웠던

그리고 피로를 단숨에 날려주었던 황토방

 

숯불에 감자를 구워먹기도하고...


 

당당하게 남의 집에서 딴 호박과 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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